필리핀 빈민지역 산타크루즈에서의 일주일, 주민조직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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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옥
광주에 있는 5․18기념재단 국제인턴으로 필리핀 COM(Community Organizers' Multiversity)라는 조직가 교육훈련기관에서 활동을 시작 했던 때가 2006년 8월이었다. 내가 그곳에서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주민조직가’ ‘주민운동’ ‘빈민운동’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심지어 내가 그런 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나는 필리핀에서 ‘빈민운동’ ‘주민운동’을 만나게 되었다. 어쩌면 일 년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빈민 운동, 주민운동’ 그리고 ‘주민조직가’에 대해 물음표만 그리게 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지금부터 나의 필리핀 빈민지역 생활기와 그곳에서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필리핀에서 인턴생활을 하면서 매일 만나는 ‘주민조직가’라는 분들의 활동과 삶을 보면서 ‘과연 주민운동, 빈민운동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건가?’라는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필리핀에 도착한지 3개월 만에 키아포로 가는 Quezon Avenue 아래 흐르는 파시그 강 줄기의 하나인 787 강 주변에 모여 살고 있는 Sta. Cruz으로 가게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에서 “어떻게..”가 흘러나왔다. 좁고 어두운 집들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서로를 의지한 채 다닥다닥 붙어있고, 787 강에서부터 나오는 악취 속에서 약 1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그곳이 바로 CO 주민조직가 (Community Organizing/Organizer)가 되는 첫 번째 "Integration(통합하기/하나되기)" 과정체험을 위해 10월 7일부터 14일까지 일주일 동안 내가 현장 활동을 다녀온 곳이다.

약 6개월 동안 한 지역을 정해 그 곳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지역민 스스로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도록 하는 CO(조직가)에게 우선 지역주민들과 하나가 되는 것은 기본적이면서도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 활동을 앞두고 내 슈퍼바이저인 징고이와 트레이너 제시카와 함께 이번 활동 목표를 “Sta. Cruz에 사는 주민들과 친해지는 것”으로 정했다. 그래서 나는 “뭐, 일주일 동안 필리핀 인구의 약 50%쯤 된다는 도시빈민들과 같이 생활하고 그들과 친구 되는 것쯤이야!”라며 편한 마음으로 그곳으로 갔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서 처음 본 Sta. Cruz의 모습은 걱정부터 앞섰다. 긴 호흡을 하고 아직도 2003년 강제철거의 흔적이 남아있는 마을의 공터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Magandang hapon! Ako si Miok galing sa Korea!"라며 내 소개를 하고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잠시 다녀가는 방문자로 나를 바라볼 뿐 낯설어하는 빛이 영력했다. 저녁을 먹고 다시 공터로 나왔는데 노래방 기계 앞에 모인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도 그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일주일간 이곳에서의 생활에 대한 기대와 걱정을 떨쳐버렸다.







이들에겐 400원도 작은 돈이 아니구나!

다음날, 꾸야 찰리의 집에서 아침7시쯤 일어났는데 찰리의 여동생인 아니카는 이미 교회에 가고 없었다. 그렇게 혼자 남은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곳에서 뜻밖에도 대형옥외광고물 아래서 빨래를 하는 아띵을 만났다. 감히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상상이나 했을까. 대형옥외광고 설치물 아래 나무판자를 대고 간신히 비를 가릴 수 있는 비닐로 집을 짓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불법거주자, Squatter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모여 사는 이들에게는 수도시설이며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진 집이 다섯 집에 불과하다. 빨래를 할 때마다 수도시설이 갖춰진 집에서 호스를 연결해 물을 끌어와서 사용한다. 그렇게 빨래를 하고, 샤워하고 밥을 짓기 위해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해 그들은 하루에 20페소를 쓴다. 쓰레기를 주워 팔거나 건설 현장 혹은 공장에서 일해 받는 이들의 하루 임금은 대략 250페소에서 300페소 정도다. 그 중에 100페소는 5명이 족히 넘는 가족들이 하루 끼니를 해결하고 나머지 100페소는 학교를 가거나 일하러 가기 위한 차비로 쓰고 남는 50페소로 물을 사는 것이니. 우리 돈으로 400원 남짓 되는 20페소가 이들에게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정말 믿기 힘든 것은 내 머릿속에서는 아직까지도 연신 “이런 곳에서 살만할까”라고 묻고 있는데,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과 사람들은 연신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마닐라 드림 그러나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

이곳의 아침은 5시 이전에 시작된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등교시간이 5시 30분이기 때문에 새벽부터 분주하게 pandesal이라고 부르는 우리식 모닝빵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등교시간이 지난 오전 7시부터 마을 공터에서 흙장난을 하며 무리를 지어 노는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학교를 다니지만 결석을 한 아이들이거나 학교에 입학조차 하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일 년에 300페소, 6000원이라는 입학금과 노트와 같은 필기구, 교복을 구입하지 못해 결석을 하는 아이들도 많다. 그런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과 함께 마을 공터에서 자기들만의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Sta Cruz는 키아포, 마닐라로 가는 길목에 있다. 그래서 지방에서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올라온 사람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우리의 60년 70년대가 그랬듯이 성공의 꿈을 안고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서울로 상경했던 모습이 필리핀의 2006년, 수도 마닐라로 가는 퀘존 다리 아래 모여 사는 빈민들의 모습이다.





쓰레기를 팔아 하루를 사는 사람들

마을공터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더 많은 집들이 서로를 나뭇가지 하나로 버틴 채 생활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곧 무너질 듯 한 사다리로 올라가야 하는 집들도 많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저녁 5시 이후가 되면 어두워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어제 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모아온 쓰레기를 분류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꾸야 크리스와 헤지는 운 좋게도 다 타버린 에어컨 본체를 주워 그 속에 있는 철과 구리를 가려내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쓰레기분리가게에 가서 팔면 300페소, 두 형제의 가족을 위한 하루 생활비가 손에 쥐어진다. 오후부터 갑자기 장대같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태풍 밀레뇨로 이곳에 있는 집들이 다 잠겼다고 사람들이 말 했을 땐 “설마..” 했는데 약 2시간 정도 내린 비에 787 QA 강물이 마을 공터를 가득 메우는 걸 내 눈으로 보면서 어느새 나도 "이러다 또 잠기는 거 아니야?"하면서 마음을 졸였으니, 이곳 주민들의 가슴은 얼마나 철렁했을까! 그런데 비가 내려 불어난 강에 들어가 떠내려 오는 쓰레기를 줍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젖먹이는 마르테스

어느 덧 이곳에서 생활한 지도 나흘이 지나고, 차츰 나를 알아보는 낯 익는 얼굴의 사람들이 늘어간다. 22살에 4명의 아이를 둔 마리테스. 처음에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 누구야?"라고 묻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는데 캄캄한 길목에서 막둥이에게 젖을 먹이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너무나도 평화로운 엄마의 모습이었다. 22살, 한국 같았으면 취업 준비를 한창하고 있을 대학교 3학년이었을 텐데. 그녀는 이미 15살에 결혼을 해서 아이 넷을 낳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가 되어있다. 그런데 젖먹이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마르테스의 품에 안긴 아이가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라야 할 텐데 갓 태어난 아기마냥 작고 여려 보인다. 나는 차마 왜 그러냐고 그녀에게 묻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일 할 수 있는 기회 땅 한국

또 다시 아침이 시작됐다. 항상 반갑게 먼저 인사를 건네던 23살 돈돈과 25살 막은 일을 하지 않는 젊은이로 우리 보다 더 심각한 필리핀 청년실업문제의 현실에서 생계를 책임지는 형이나 친척에 의존 한 채 하루 종일 마을 공터에 나와 체스와 농구로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그렇게 공터에 나와 시간만 보내는 그들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운 좋게 일자리를 얻게 된다 하더라고 대학을 다니지 못한 우리는 6개월 밖에 일을 못한다. 6개월 후에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하는데 그때 마다 직업소개소에 내야하는 돈이 더 들어간다. 그래서 여기 필리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다들 다른 나라로 일 하러 가려고 하는지 아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Overseas Filipino Worker. 해외 각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필리핀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대부분은 가정부와 공장노동자 혹은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도 이미 7만 명의 필리핀노동자들이 일하고 있고 현재 3만 명이 넘는 필리핀사람들이 한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 그 하루를 그저 흘려보낼 수 없어 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그들을 보면서 한국에서 힘겹게 일하고 있을 필리핀 노동자들을 생각했다. 과연 이들은 한국에서 외국인노동자로 살아가는 필리핀노동자들의 외롭고 힘든 삶을 알고나 있는 걸까? 무엇으로 하여금 이들에게 일 할 수 있는 기회와 희망을 얻게 할 수 있을까?
이미 세계는 모든 장벽이 없이 하나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과연 이들에게 다른 나라에서 일하기 위해서 뛰어 넘어야 하는 장벽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행여 그 장벽들을 넘어 한국에서, 다른 나라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지라도 그곳에서 받는 차별과 열악한 노동환경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야하는 것은 또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 걸까. 이곳에서 물어지는 내 모든 질문들은 끝내 답이 없이 머릿속에서 계속 메아리로만 맴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산타 크루즈에서 생활하는 기간 중에 COM주최로 열린 Gender and Development 워크샵은 KV 1, Sta.Cruz, Sta. Lucia, Talayan 네 지역에서 총 3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각 지역에서 안고 있는 문제들이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결 할 지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는 자리였는데 나는 아떼 라켈, 꾸야 찰리 및 몇몇 주민 분들과 함께 했다.
아떼 라켈이 산타크루즈를 대표해서 “우리지역의 문제는 크게 세 가지예요. 보건소가 없어서 갓 태어난 아기들이나 어린 아이들이 기본적인 예방접종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하루 3끼를 잘 챙겨 먹지 못하다 보니 영양실조를 앓고 있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보건소를 짓고 기본적인 비타민과 우유를 제공해줬으면 합니다. 아마도 이건 내년 퀘죤시의 예산안을 짜는 과정에서 우리 산타크루즈의 의견을 직접 모아 시청에 진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 계속적으로 주민들과 회의를 하고 의견수렴을 할거고요. 두 번째로는 생계 수단이 없어요. 마닐라 주변에서 살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일자리를 얻지 못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가정이 많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그나마 이곳에 살기 때문에 쓰레기라도 주워서 팔 수 있는데... 언제 다시 강제철거를 당하면 그때는 정말 어디로 가서 다시 정착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네요. 마지막으로 매 맞는 아내들이 많습니다. 몇 명이나 되는지 정확한 수치로 말할 수 없지만, 매 맞는 아내들이 있는 건 확실합니다. 이 문제는 사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모른 척 하고 계속 지나갈 수도 없고....” 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그래도 이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걸 느꼈다.

CO(조직가)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묻혀있기만 했던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들을 괴롭히는 문제들을 주민 스스로 일어나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다. 쉽게 보이지만 오랜 시간 스페인, 미국 그리고 일본에 의한 식민지시대를 살아온 필리핀 사람들을 스스로 일어나게 하는 일은 정말 힘들고,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아마도 제시카와 징고이 그리고 COM의 주민조직가들이 20대부터 지금까지 열정이란 이름으로 그 뜻을 굽히지 않고 더딜 지라도 계속 해왔기 때문에 아떼 라켈과 같은 주민지도자가 당당한 목소리로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산타크루즈의 문제들을 앞으로 주민들의 힘으로 뜨겁게 싸워나갈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힘이 났다. 필리핀 도시빈민들의 옆에서 그렇게 조용히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앞으로 살고자 하는 주민조직가의 참 모습이다.



ps. 애들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요.




오미옥 님은 LOCOA (Leaders and Organizers of Community Organization in Asia - 아시아주민운동연대) 활동가 입니다
2007년12월31일 13:2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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