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안되는 걸 되게 하라
[기획] 차별금지법안과 주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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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는 걸, 어쩔 수 없죠.” 개발사업구역에서 만난 한 세입자는 자신이 임대주택 입주권과 주거이전비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고개를 숙이며 돌아섰다. 세입자대책을 규정하는 현행 법률은 개발사업구역지정을 위한 공람공고일부터 3개월 이전에 살았던 세입자에게만 주거와 관련된 보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은 이런 현실을 ‘차별’로 인식할 수 있을까.

지난 12월 4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의 차별금지법안은 “재화·용역 등의 공급이나 이용”, “법령과 정책의 집행” 등의 영역에서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 등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차별금지는 주거권의 한 요소로 다루어지기도 하지만 주거권을 넘어서는 인권의 본원적 가치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척박한 현실에서 차별금지법은 주거권 실현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권리는 드러내고 책임은 돌려라

주거와 관련된 영역에서 ‘차별’하면 익숙하게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임대아파트 단지이다. 개발사업으로 새로운 아파트를 지어 올릴 때 최소한의 비율은 임대아파트로 짓게 했더니 앙갚음이나 하듯 단지를 아예 분리하고 철조망이나 옹벽으로 구별하면서부터 차별이 시작됐다.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은 버스정류장이나 학교, 슈퍼마켓을 갈 때 단지를 에둘러 돌아가야 했고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경험하는 따돌림이나 괴롭힘으로 철조망보다 날카로운 상처를 입게 됐다.

현실이 차츰 드러나면서 최근에는 아파트단지를 구별하지 않고 혼합해 짓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순전히 조합이나 건설회사의 선의에 맡겨져 있으며 인권의 문제로 다뤄지지 않는다. 임대아파트 입주민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부당한 차별이 차별금지법을 통해 다뤄진다면 임대아파트 단지 설계의 기준이 인권의 관점에서 의무로 부과될 수 있을 것이다.

공공연히 얘기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만한 차별도 있다. 이주노동자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집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이 그것이다. ‘혼자 사는 여자’라고, ‘아이 딸린 여자’라고, ‘나잇살 먹은 노인’이라고 임대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노골적인 거부도 있지만, “방 벌써 나갔어요”라는 거짓말 한 마디에 항변의 기회가 봉쇄되기도 한다. 차별피해자들은 속상함을 씹으며 속수무책 돌아서는 수밖에 없었다.

차별금지법은 차별피해자가 구제를 요청할 때 차별가해자가 그것이 차별이 아니라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도록 한다. 집 구할 때마다 분을 묵묵히 삭여야 했던 이들에게는 이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따져 묻기 힘들었던 얘기를 준비해야 할 책임이 임대인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시야를 넓히면 차별이 보인다

조금 시야를 넓혀보자. 휠체어를 타야 하는 장애인들은 집을 구했다 하더라도 집 안에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턱을 없애기 위한 수리를 해야 한다.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방의 크기나 방문의 너비도 적당히 확보되어야 한다. 동일한 수준의 주거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더욱 많은 주거비를 부담해야 하고 동일한 주거비를 들여서도 더욱 열악한 주거환경에 처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즉,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주거시설의 이용에서 차별을 겪게 된다. 추정장애인가구 비율이 전체 가구의 10%를 웃돌지만 06년 말 현재 공공임대주택 재고 중 장애인 공급세대는 1.8%에 불과하다. 이렇듯 공공주택에서 드러나는 차별의 지표로 민간의 주택시장에서 장애인들이 감내하고 있는 차별까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는 주거시설 공급자의 부작위로 발생하는 불리한 대우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공공임대아파트와 같은 주거시설부터 장애로 인한 차별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는 차별시정조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차별금지법에 차별예방을 위한 조치로서, 사용자나 교육기관의 장뿐만 아니라 주거시설 공급자의 편의제공 의무를 명시하는 것도 확실한 방법이다. 차별금지는 단순히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처우를 하는 것으로 인식되거나 작위에 의한 차별만 금지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주거시설의 직접 이용뿐만 아니라 주거시설을 공급받거나 주거와 관련된 금융서비스의 이용과 관련된 차별도 있다. 현재 공공임대아파트는 혈연가족의 동거만을 허용하고 있다. 동성애자 커플은 법적인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같이 살 경우 전대(빌린 것을 다시 빌려주는 행위로,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전대하는 것은 불법이다)의 혐의를 받고 퇴거될 수 있다. 공급순서에서도 서로 배우자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1인가구로 다뤄져 우선순위에서부터 밀리게 된다. 전세자금 대출제도도 마찬가지. 배우자나 부양가족이 없으면서 35세 미만인 사람은 대출을 신청할 수도 없다.

성적 지향, 가족형태, 나이 등에 따른 차별임이 분명한 위 제도들은 정부의 재량범위로만 여겨졌고 한 번도 그것이 합리적인 이유인지 논의의 장에 올라본 적이 없다. 스코틀랜드는 주거권이 청구권적 권리로 인정된다. 예를 들어,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한부모 여성이 살만한 집을 요구했으나 충족되지 않았을 때 법원에 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2012년까지 모든 인구를 대상으로 청구권을 확장할 계획이다. 정책적으로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는 집단에 우선순위가 부여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우선순위의 근거가 무엇인지, 그것의 후속정책들은 어떨 지가 해명되어야 한다.

단지 그대가 세입자라는 이유만으로

글머리에서 언급한 세입자대책 기준일도 비슷한 문제다. ‘구역지정공람공고일 3개월 이전‘이라는 특정한 시점을 전후로 이사 온 세입자들은 하루 이틀 차이 때문에 세입자대책을 받거나 받지 못하게 된다. 투기를 막기 위해 구역지정 3개월 이전이라는 단서를 달았다는데, 과연 세입자가 투기를 목적으로 이주한다고 가정하는 것이 타당한지,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3개월이라는 기준이 합리적이고 적절한지에 대해 정부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정책개선을 요구해온 지는 오래됐지만 정책담당 부처가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차별금지법이 시정명령권을 포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개발사업의 종류에 따라 세입자대책이 차이나는 것도 법령 자체가 만들어내는 차별이다. “공익사업의 시행으로 인하여 주거용 건축물을 제공함에 따라 생활의 근거를 상실하게 되는 자”인 이주대책대상자에서 세입자를 제외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주대책은 토지나 건물에 대한 보상과는 다른 것으로, 개발사업으로 생활의 근거를 상실하고 이주해야 하는 동일한 상황에 집주인이냐 세입자냐를 구별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될 수 없다.

개발사업구역 지정은 한 동네를 개발하기 위한 계획이 시행될 범위를 정하는 절차다. 그 동네 안에서는 집주인이든, 세입자든, 같이 물난리를 겪고 같이 겨울눈을 쓸고 잔치나 장례도 같이 치르며 어울리던 사람들이었다. 차이는 오직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누구 이름이 있는 지이다. 그러나 개발사업계획을 세울 때 세입자의 의견은 전혀 반영될 수 없다. 집주인들로 구성된 조합이 결정하는 대로 마을은 바뀌게 되고 세입자들은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 어떻게 시행될지 안절부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개발사업이 마을을 살기 좋게 바꾸는 과정보다는 토지와 주거의 재산 가치를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지니 세입자가 ‘살고 있다’는 진실보다는 ‘집이 없다’는 사실만이 ‘반영’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차별금지의 기운이 확산되면서 ‘당연함’이 ‘어색함’으로 변해가게 될까. 차별금지법은 살만한 집에 살 권리를 재산으로부터 떼어놓고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우리에게 제공할까.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들을 빼앗기지 않을 권리로 출발한 재산권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모든 권리를 잠식하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이제 재산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재화·용역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보증하는 절대권력이다. 여기에 차별금지의 예리한 시선을 집중해야 한다. 특히 주거권과 관련된 차별에서 재산권과의 경합은 첨예하게 드러날 것이다.

“안되는 걸” 되게 만들 때 살만한 집도 만들어진다

주거빈곤의 문제나 강제퇴거처럼 전통적인 주거권침해에서 다뤄진 것과 다른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 민감한 차별사유와 연관되어 차별 판단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경우 차별금지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도 현재 차별금지법안에서 삭제된 차별사유를 복원하고 시정명령권 등 차별시정조치를 강화하는 방향의 법 제정이 필수적이다. 각각의 침해에 대해 신속하고 효과적인 구제를 제공하는 것은 차별금지법의 주요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재산이나 소득의 차이로 인한 불평등까지 차별로 바라볼 수 있는 ‘어색함’을 생산하는 것이 반차별운동의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왜 나는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가?”, “나는 왜 2년마다 재계약을 하면서 이사를 다녀야 하는가?”, “건설자본은 왜 내가 살 수도 없는 값비싼 아파트만 짓고 있는가?” 등의 질문들을 얼마나 쏟아낼 수 있을 지가 반차별운동의 진전을 점검할 하나의 기준이 될 것이다.

성별, 연령, 성적 지향, 장애, 재산,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살만한 집에 살 권리를 보장하라는 반차별운동이 “안되는 걸” 되게 만들 때, 누구나 누릴 만한 ‘살만한 집’은 어떤 것이며 누구부터 어느 수준까지 보장할 것인지를 연대의 기초 위에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인권오름 제 83 호
2007년12월31일 14: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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